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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특수 부대 이름 2007. 7. 1. 23:51 수정

쪽마 2022. 10. 19.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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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부대 이름은 왜 찾아봤었지?


 그린베레(Green Berets)

애론 뱅크(Aaron Bank)대령에 의해 1952년 창설된   육군의 특수부대로 10 공수특전대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그린베레는 요원들이 녹색베레모를 쓴 데서 붙여진 별명이다.

이 부대는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 공수부대, 레인져 부대 및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했던 예비역들로 구성되었으며 주 임무는 창설자 Bank 대령에 의하면 ""육해공으로부터 적지에 침투하여 저항군이나 게릴라를 양성하여 유격전을 펼치는 것""이며 또 다른 임무는 적지역 깊숙히 침투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폭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레인져는 강력한 기습 공격을 주로 하지만 그린베레는 적지에서 수개월간을 지내며 작전을 해야하기 때문에 그린베레 요원들은 제한된 물자로 생존하는 방법을 습득하고 있다.

1952년 말 한국전쟁에 첫번째 그린베레 요원들이 실전에 투입되었다. 1957년 일본 오끼나와에서 훈련팀이 창설되었으며 이 부대는 남베트남에 파견되어 군사자문 역활을 수행하였다.

그린베레는 케네디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당시 전성기를 맞았으며 훈련학교의 이름을 'John F. Kennedy Special Warfare Center'라고 바꾸었다.

1971년 베트남에서 철수한 후 그린베레 요원의 수는 줄어들었으나 새로운 훈련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으며 부대내에도 변화가 있었다.

1980년대에는 세계 각국의 여러곳에 파견되었으며 특히 온두라스, 엘살바도르에서는 그곳 특수부대의 훈련을 돕기도 했다. 1989년 12월 파나마에서의 작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델타포스(Delta Force)
 
델타포스는 정규군이 투입되기 힘든 상황에 뛰어들어 요인 암살, 인질 구출, 적 기지 파괴 등의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미 육군의 특수부대.

델타포스는 특수전 장교 출신이며, SAS에서 근무한 바 있는 차알스 베크위드(Charles Beckwith)에 의해 1977년 11월에 창설된 것으로 영국 공군특수부대인 SAS(Special Air Services)를 모델로 삼았다.

델타포스는 주로 해외에서 활동하며, 대사관  항공기 인질 구출 작전, 마약 및 핵물질밀매단 와해 공작 등을 수행한다.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랙(FortBragg)에 본부가 있다.

육,해,공군의 다른 특수부대와 달리 특수전사령부(USSOCOM)의 통제 체계에서 벗어나 '연합특전사'(JSOC:Joint Special Operations Command)의 지휘체계 아래 있다. JSOC산하에 있는 부대는 특수부대 가운데서도 가장 비밀을 요하는 임무만을 수행하는 부대들로 해군의 연구개발단(DevGRU)과 육군의 160항공단, 공군의 제2항공사단 일부가 여기에 해당한다.

델타포스는 2001년 현재 5개 대대, 800여명의 요원들로 구성돼 있고 81년 인도네시아 여객기 구출작전, 84년 베네수엘라 여객기 인질 구출작전,89년 파나마 침공시 미국인 인질 구출작전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러나 1979년 이란 혁명 때 수도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에 억류된 미국 인질 66명을 구하려다 실패하였다.


 레인저(Ranger)

레인저 부대는 그린베레, 델타포스와 함께 미국 육군의 3대 특수부대.

미 육군 특수작전사령부 소속의 경보병 특공부대이다. 전통적으로 착용해온 검은 베레모가 유명하다.

레인저 부대의 임무는 일반적으로 어떤 악조건 하에서도 적진에 맨먼저 침투, 신속한 공격을 통해 활주로와 기타 목표지점을 점령한 후 다른 증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사수하는 것이다. 특히 공항 점령과 기습은 이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모두 자원병으로 이루어진 레인저는 공중, 지상, 해상 등 어떤 경로로도 침투하고 극지, 정글, 사막,산악 지형 등 어떤 상황에서도 싸울 수 있도록 지옥훈련을 받고 있다. 지원자중에는 200명중 1명 정도가 최종과정을 마칠 정도로 선발이 까다롭고 여성대원은 없다.

레인저는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이전부터 존재해왔으며, 특수부대로서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은 2차 대전 때이다.

당시 이 부대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절벽을 기어올라 대형 포대를 폭파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올린 이후, 베트남전과 1983년 그레나다, 1989년 파나마에서 명성을 쌓았다. 하지만 1980년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구출작전과 1993년 소말리아에서 모하메드 파라아이디드 체포작전에서 실패한 경험도 있다.

베트남전 이후 각 보병.공수사단에 산재된 레인저중대가 통합되어 '제75레인저연대'라는 단일지휘체계로 발족되었으며, 1984년 1개 대대가 증설돼 2001년 현재 3대대로 이루어져있다.

연대본부는 조지아주 포트 베닝에 있다.


☞ SEAL/SEAL TEAM-6

해상(Sea), 항공(Air), 육상(Land)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지어진 SEAL은 1962년 1월 1일 케네디 대통령의 특명에 의해 창설된 미 해군의 특수부대.

미 해군의 특수전사령부(Special Operation Command) 산하에 속해 있는 SEAL은 태평양 지역에 위치한 제 1특수전단에 1,3,5 팀이, 대서양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제 2특수전단에 2,4,6,8 팀이 소속되어 있다.

이중 SEAL-6 는 델타포스와 함께 합동특수전사령부(Joint Special Operations Command)에 소속되어 있으며, 대원선발과 훈련은 혹독하기로 소문이 나있다.

SEAL팀은 베트남전에 참가하여 군수기지(Logistics Base) 폭파 및 고급정보 수집에 커다란 공헌을 했으며, 쿠바 미사일 위기 때에도 투입되어 미국의 외교정책을 측면에서 지원하기도 했다.

SEAL팀이 순수한 군사업무의 수행에서 대테러리즘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79년 12월 발생해 444일간이나 계속된 테헤란 미국 대사관 점거사건 이후. 여러 문제점을 노출한 대사관 사건이후 미국정부는 SEAL 내에 1백명 규모의 SEAL-6를 창설하여 대테러리즘 능력을 보강했다.


☞ 미 해병특수부대 (MEU)

미 해군당국은 해병 특수부대(MEU; Marine Expeditionary Unit)가 편제상 ""특수부대""는 아니지만 ""특수전이 가능한 부대""라고 말한다. 현재 적어도 2개 부대가 인도양에 머물고 있으며 민첩함과 치밀성 그리고 다양함까지 갖춘 군사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 해병 특수부대는 일반적으로 장비와 병참 및 기술지원, 무기, 군함 면에서 일반 부대보다 다양하고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어 막강한 전투능력을 갖추게 된다. 해병 특수부대의 임무는 해상으로부터의 작전을 지원하는 것이다.

해병 특수부대의 지휘관은 대령이며 보통 2,200명 정도로 구성된다. 보병대대는 일반적으로 육해공 합동작전에 투입되며 경무장 운송수단을 사용하고 공군작전부대는 헬리콥터와 헤리어 젯(Harrier jets)같은 고정날개가 장착된 군항기를 이용한다.


☞ 공군 특수부대 (Air Force Special Operations Forces)

공군특수부대는 근접항공지원을 제공하는 부대다.

공군특수부대는 근접항공지원, 저격, 급유 및 지원업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이 부대는 최첨단의 항법, 정찰 장비를 갖추고 있다.


☞ Marine Recon

Marine Recon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그 존재가 알려졌다. 1944 이전에는 정찰/저격 부대였으나 1944년 4월 상륙 정찰임무의 2개 대대가 창설되었다.

초기에는 UDT(Underwater Demolition Team:수중폭파팀)과 공동으로 해변 정찰 및    측량등의 임무를 수행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5년 초에는 UDT와 함께 이오지마섬에 투입되어 작전에 임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에서는 한국 동해에서 UDT와 함께 철도, 터널 및 교량 폭파의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적 후방 200마일 지점에서 후방 교란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1951년 Marine Recon은   해병대 역사상 최초의 헬리콥터 침투공격을 시도하였다.

1965년 베트남전쟁에서는 담당 부대를 지원하여 작전에 임했으며 적의 종심 깊은 곳에서 장거리 정찰 작전을 실시하였다. 베트남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요원은 1971년 철수하였다.

1976년 부터는 인질 구출작전에도 투입되어 연방보안관과 미육군특수부대 및 Marine Recon요원들이 직접적인 작전에 투입된다. 1977년 저격병이 추가되어 전투력이 향상되기도 하였다.

1983년 10월 Marine Recon은 그레나다 침공에 투입되었으며 1989년에는 파나마에서의 'Just Cause' 작전에 투입되었다.

1990년에는 걸프전에 투입되어 이라크와의 최전선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여   해병대에게 적의 이동로를 알려기도 했으며 걸프전에서 238명의 이라크 군을 포로로 하는 전과를 올렸다.

Marine Recon은 특수전사령부(SOCOM, Special Operation Command) 소속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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